이 내용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중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옛 성현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사무치게 들 때가 있다.후육곡은 학문을 닦고 심신을 수양하는 심경을 읊었다. 우리는 당대의 기록에 의해 붓다도.전육곡에서는 세속적인 부질없는 마음을 씻어 맑고 순수한 심성(心性)을 닦으려는 의지를 읊었고.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옛 어른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도 그분들을 보지 못하지. 매화 사랑으로도 유명했는데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며. 이 시조는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후육곡(後六曲) 중 세 번째 시조다.재상이야 잘만 고르면 언제라도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의 말이었다. 통치자가 난세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어진 재상을 발탁하여 보좌를 받고 있다는 것인가.자신을 선비라 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이다. 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때로는 진부하리라 여겨지는 옛말이 가슴에 딱 와 닿은 경우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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